검색결과
'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에 대한 통합 검색 결과 : 전체 5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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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사료 2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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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스크랩]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사건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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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480510
날짜 : 1974.04.03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요약설명 :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 개요 민중 민족 민주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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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全國民主靑年學生總聯盟事件 被告人寫眞(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사건 피고인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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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482664
날짜 : 1974.00.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요약설명 :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사건 피고인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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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全國民主靑年學生總聯盟 國家変乱企圖事件全貌(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국가변란기획사건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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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480516
날짜 : 1974.03.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요약설명 : 1. 인민혁명당의 창당 2. 인민혁명당의 재건 3. 인민혁명당의 투쟁목표와 전략 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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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사료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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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청학련사건 기념사업회 준비위원회 결성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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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709849
날짜 : 1993.05.31
구분 : 사진필름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사건 관련인사 1백여명이 모인 가운데 민청학련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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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신반대투쟁이 계속되자 긴급조치 4호를 발표하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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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718678
날짜 : 1974.04.03
구분 : 사진필름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선포,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과 이에 관련되는 제단체를 조직하거나 이에 가입,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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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년 6월 22일 광화문갤러리에서 열린 민주화운동사료전시회를 관람하고 있는 김근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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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928480
날짜 : 2001.06.22
구분 : 사진필름류 > 사진
기증자 : 김근태재단
요약설명 : 6월민주항쟁 등에 관련된 각종 민주화 관련 사료 총 300여점을 전시했음. 사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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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 컬렉션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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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 콘텐츠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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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무님, 총무님, 우리들의 총무님_ 김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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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되는 사람이었다. 우리나라가 반드시 민주화되어야 한다고 믿는 한림이지만 딸 윤만은 다치지 않기를 바랐다. 가급적이면 이 역사의 광풍을 피해 가기 바랐다. 그날, 악수를 하고 집을 나선 윤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헤어진 딸을 몇 달 만에 군사 법정에서 만난 것이다. 학생들의 시위가 예년보다 심해지자 박정희 정권은 1974년 4월 3일, 유신헌법 비판에 대해 최고 15년 형을 내릴 수 있는 이전의 긴급조치와 달리 사형까지 선고할 수 있는 긴급조치 4호를 선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4월 3일을 기해 전국적으로 시위를 전개하기로 했고, 미리 이 상황을 파악한 박정권은 학생들을 대대적으로 검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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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 위에 선 어머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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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모여 유신과 폭압적인 긴급조치에 저항하기 위해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이하 민청학련)이름으로 민중민족민주선언 성명서를 낸 것을 빌미로 정부를 전복하고 폭력혁명을 일으킬 목적이 있다는 죄를 날조하여 학계 종교계의 인사들을 대대적으로 잡아들였다. 한림은 윤이가 경찰서에 잡혀갔다는 소식을 듣고도 열흘이 지나서야 서대문 교도소에서 윤이를 만날 수 있었다. 면회실에서 사색이 다 된 어머니를 본 윤은 밝게 웃어보였다. “엄마, 나 괜찮아요. 여학생이라고 고문도 안하고 많이 봐줬어요.” 민청학련 관련자 1천여 명 중에는 여학생이 몇 명 안 되었다. “약도 못 먹고 몸은 괜찮아?” “감옥체질인가? 하나도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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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청학련사건 - “사형선고를 받아 영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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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이 조치는 들불처럼 번져나가는 민주화요구에 조금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긴급조치 1호가 내려진 지 이틀 후인 1월 10일, 서울대생 유인태의 집에 이철, 나병식, 서중석 등 열 명 가까운 대학생들이 모였다. 지방대학을 대표해서 올라온 학생도 있었다. 이들은 대학이 개강하는 3월부터 대학별로 시위를 벌이다가 4월 초에 전국적으로 시위를 일으키기로 했다. “민주주의를 위한 우리의 순수한 의도가 왜곡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조직이나 이름을 갖지 않기로 하자.” “야당 등 어떠한 정치세력의 지도도 받지 않아야 해. 단, 윤보선 대통령 등 민주화운동의 원로들에게는 알리자.” 이 날의 결의에 따라 3월부터 서강대, 연세대 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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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 아카이브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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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사료 1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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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법반대 전국학생투쟁위원회 성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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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 1961.3.17
분류 : 2.8한미경제협정 및 2대악법 반대운동
요약설명 : 위해 어떠한 반민족적 반민주적 악법의 티끌만한 출현도 필사적으로 거부하며 이것을 둘러싼 민족반역자는 추호도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을. 그것은 우리의 엄숙한 역사적 사명감이며 민족의 폐부로부터 우러나오는 자유 쟁취의 함성이기 때문이다.1961년 3월 17일 악법반대 전국학생투쟁위원회 전한국학생총연맹 전국학생자립경제추진회 전국학생혁신연맹 민족통일연구소 민주학생통일연맹 전국근로고학생총연맹 피양민학살유족회 중앙학생위원회 서울대학교민족통일연맹 고려대학교민족통일연맹 성균관대학교민족통일전선 건국대학교민족통일연맹 단국대학민족통일연맹 외국어대학민족통일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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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생, YTP(청사회) 정체와 학원사찰의 진상 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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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 1964.4.23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요약설명 : ‘청년사상연구회’의 영문 Youth Thought Party의 약자로 간단히 ‘청사회’라고도 한다. 이 명칭은 일본 극우단체의 이름을 그대로 모방한 것이다.(송철원, 「YTP(청사회: 靑思會)」, 『기억과 전망』 26, 2012, 311쪽)민주공화당은 1963년 10월 15일의 대통령선거에서 박정희를 당선시키기 위해 등록된 청년단체를 필요로 하였다. 이에 비밀단체인 MTP이름은 ‘문맹퇴치회’로 활동기간은 1961.5.16~1963.7.24이다.를 청년사상연구회(청사회)로 이름을 바꿔 1963년 7월 25일 결성대회를 통해 등장시켰다.결성대회 때는 ‘YTP’라는 명칭을 쓰지 않고 ‘청사회’라는 명칭을 사용하여 이 둘을 혼동하게 되는 빌미를 제공했다.(송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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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 및 이화여대 학생들, 정부에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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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 1970.11.20
분류 : 분류없음 > 학생
요약설명 : 3면; 『민주전선』 1970.11.30. 2면; 『연세춘추』 1970.11.23. 3면; 『자유의 종』 6, 1970.11.30, 1면공동결의문오늘 서울 시내 각 대학 학생대표, 각 청년·학생·종교·단체 대표는 모든 근로자의 스승이며 모든 청년의 스승이며 또한 모든 종교인의 스승인 고 전태일 선생의 죽음 앞에서 다음과 같이 결의한다. 1)전태일 선생께서는 평화시장 근로자들의 지옥과 같은 생활고를 타개하기 위해 줄기차게 투쟁해 오시다가 너무나 차가운 사회의 반응에 항의하여 ‘내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해 달라.’ 는 뼈저린 유언을 우리 모두에게 남기면서 5백만 근로자와 가난한 겨레의 설움을 한 몸에 안고 분신 자결을 하시었다. 그러나 모든 순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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